[윤대녕 맛 산문집 “어머니의 수저”에서]
내가 자주 가던 제주시 연동 생맥주집 건너편에 말고기를 파는 식당이 있었다.
여태껏 먹어보지 않은 음식이어서 선뜻 내키지 않았으나 호기심에 그예 문을 열고 들어가보았다. 2004년 여름의 일이다. 동행한 사람은 그날 서울에서 내려온 시인이었다.
사실은 그가 말고기를 먹어보고 싶다고 해서 찾아간 것이다.
금지구역에 들어온 사람들처럼 시인과 나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다 맨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여자 종업원이 다가와 테이블에 물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뭘로 드실 거죠?”
시인이 나를 바라보았다.
“뭐로 할까?”
“낸들 아나.”
엉거주춤 서 있는 종업원에게 나는 잠시 후 다시 와달라고 얘기했다.
벽에 붙어 있는 메뉴를 살펴보았다.
- 마육회
- 마뼛국
- 마샤브샤브
- 마불고기
- 마갈비찜
- 마순대
- 마생고기
- 마야채볶음
생고기를 기준으로 가격은 소고기와 비슷했다.
“종류가 무척 다양하네. 도대체 뭘 먹지?”
시인이 묻고 내가 대답했다.
“부담없이 샤브샤브로 할까?”
“샤브샤브라. 그렇게 얇게 떠서 익혀 먹으면 말고기 맛을 제대로 알기나 하겠어?”
“그럼 생고기로 하든지.”
“소고기처럼 그냥 소금 뿌려서 구워 먹으면 되는 건가?”
“그건 물어보면 되겠지. 여기요!”
종업원이 오자 시인이 생고기 이 인분을 주문했다.
주문한 고기가 나오는 동안에도 시인은 계속 말고기 얘기를 했다.
말고기를 먹으러 제주도에 내려온 것 같았다.
“제주도에 말고깃집이 많은가?”
“그걸 낸들 어찌 알겠나. 근처에서 두어 군데 더 본 것 같긴 하군.
성산에 갔을 때도 본 것 같고. 몽골에서 말이 처음 들어온 곳이 그쪽이라고 하더군.
제주도 사람들은 약으로도 먹는 것 같던데.”
“어디에 좋은데?”
“신경통, 중풍, 간질환에 특효가 있다고 하더군. 말젖은 고혈압, 결핵, 간염 치료에 쓰이고 말기름은 화상에 바르면 쉽게 낫는다고 하더군. 보습효과가 뛰어나 요즘엔 화장품 재료로도 쓰인다지?”
“몽골에서 말이 들어온 게 언제더라?”
고려 충렬왕 때 원나라가 지금의 성산읍 수산리인 수산평에 목마장을 설치하고 몽고말 160마리와 소, 나귀, 양, 낙타 같은 동물을 처음 방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를 관리하는 단사관까지 파견해 일본 정벌을 위한 거점으로 삼았다.
조랑말은 몽골어로 ‘과일나무’라는 뜻이라고 한다.
과일나무 아래로 다닐 만한 조그만 말이라는 뜻이겠다.
“옛날에는 마육포가 흰사슴포, 감귤과 함께 진상품이었다고 하더군.”
“흰사슴이 진짜 있었다는 말이네? 백록 말이야.”
“그렇겠지?”
쟁반에 담겨 나온 생고기는 그 빛이 붉다 못해 검었다.
종업원이 생고기를 숯불에 올려놓는 사이 시인은 쉬지 않고 물었다.
“말고기에 술은 뭐가 좋아요?”
“알아서 드세요. 대개 소주들을 하시더라구요.”
나는 한라산 소주를 달라고 했다. 제주도에 왔으니 제주도 술을 마셔야 하는 것이다.
“말고기가 어디서 들어와요?”
“도축장은 저도 모르겠고요. 일주일에 한 번, 화요일마다 들어와요.”
“손님은 많아요?”
“그럭저럭요. 일본인 관광객이 반쯤 돼요. 그 사람들은 말고기라면 환장해요.
일본에서 먹으려면 엄청 비싸거든요.”
말고기는 소고기에 비해 좀더 쫄깃한 느낌이었다. 육즙도 좀 적게 나오는 편이었다.
소고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마블링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갖고 있는 통념처럼 그렇게 질기지는 않았다.
마른풀 냄새처럼 약간 누린내가 나는 듯했지만, 그거야 육고기 특유의 냄새라고 보는 게 마땅했다.
먹을수록 자체의 독특한 풍미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어디 가서 말고기를 먹어보겠는가.
그로부터 한 달쯤 뒤, 나는 아내에게 말고기를 먹으러 가자고했다가
그다지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
그날이 마침 그녀의 생일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