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선생 2010. 2. 13. 11:07

  

[윤대녕 맛 산문집 “어머니의 수저”에서]

 

  제주도 전복죽은 내장까지 함께 갈아서 죽을 쑨다. 그러니 연둣빛으로 진득하니 매우 고소하다.

깅이죽처럼 좁쌀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제주도라고 해서 전복이 흔한 건 아니다.

옛날처럼 많이 잡히지 않는 것이다.


  낚시를 하다 보면 갯바위 아래로 종종 해녀들이 접근한다.

소라, 전복이 갯바위 밑에 붙어 살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 낚시는 사실상 포기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녀들을 탓해서는 안 된다. 그네들에겐 그것이 곧 생업이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낚싯대를 내려놓고 해녀에게 묻곤 한다.


  “물속에 고기 좀 있어요?”

  “없어. 물이 차잖어. 괜히 시간 쓰지 말고 집에 가서 마누라 일이나 도와줘.”

  “안 그래도 반찬거리 장만하러 나왔어요. 그런데 전복은 좀 나와요?”

  “그것도 없어. 벌써 몇 해짼가 몰라. 물이 변해서 그런지 전복 씨를 뿌려 놔도 크질 않어.”

  “소라는요?”

  “전복보단 좀 낫지만 마찬가지여. 얼른 집에 가.”

  “소라 좀 사가면 안 될까요? 만 원어치만 주세요.”

  “어촌계에서 알면 큰일 나. 공동작업이거든.”

  “그래도 좀 파세요. 고기를 한 마리도 못 잡아서 그래요. 빈 손으로 집에 갈 수는 없잖아요.”

  “안 돼, 돌문어하고 객주리나 가져가.”


  돌문어와 객주리는 전복과 소라를 채취하면서 얻는 일종의 부산물이다.

바위틈에 숨어 있는 놈을 작살이다 맨손으로 잡아낸다.

만 원을 건네주니 돌문어와 객주리에 소라 두 개를 얹어준다. 그리고 이런 말도 잊지 않는다.

  “어디 가서 얘기하지 마.”

  나야 얘기할 데도 없다.


  요즘 전복은 대부분 양식이다. 제주도와 남해안 지방에서 대량 양식해 수산물 시장에 공급한다.

당연히 자연산에 비해 맛이 떨어진다. 회로 먹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도돌도돌 씹히는 맛이 없고 물렁하다. 향도 떨어진다.

그러나 어쩌랴. 더 이상 자연산은 잡히지 않는 것을.


  제주시 동문시장이나 서귀포의 시장에 가면 해녀 할머니들이 좌판에 올려놓고 파는 전복이 있다.

물기가 마르지 않도록 해초에 정성껏 덮어둔다. 이는 자연산이라고 봐야 한다.

거기서 몇 개 사다가 죽을 쑤어서 먹으면 보약을 먹은 듯 든든하다. 물론 내장을 함께 갈아

넣고 죽을 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