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귀
내가 사는 곳 제주도 성산포 읍내의 오일장은 끝자리가 4일, 9일날 선다.
특별히 기다려 사야할 물건도 없지만 역시 특별히 할 일도 없고 해서
부인님이 장에 가실 때는 얼른 김기사를 자청하고는 하릴없이 뒷짐 쥐고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하며 꽁무니를 따라 한바퀴 돌곤 한다.
시골장에 별다른 볼거리는 없고 계절 따라 나오는 생선이 그나마 관심꺼리다.
쭈욱 좌판을 벌이고 있는 어물전에서 내가 좋아하는 아귀를 요기저기서
사 먹어 보았는데, 그 때마다 여엉~ 아니올씨다 다.
한번은 헤살헤살 웃는 아줌마의 꼬득임에 넘어가 난생 처음 빡빡 우겨
한 상자를 떠억 사다가 마당 빨래 건조대에 주렁주렁 매달아 놓았더니
쌀쌀한 날씨에 어디서 왔는지 온 동네 파리란 파리는 다 모여들어
어마 뜨거라 하면서 이 참에 성당 레지오 단원들 파티나 하자고
몽땅 탕을 끓였더니 아풀싸 괴기는 어디가고 뼉다구만 얼기설기...
어떤 이는 아귀를 꾸덕꾸덕하게 말려서 요리를 해야 하는데
생물을 써서 그렇다는둥 또 어떤 이는 어디서 물아귀를 삿냐는둥 하며
죄없는 콩나물국만 원없이들 들이키고 돌아가게 만들어
괜시리 마누라 스타일만 구겨 놓았다.
‘한림아저씨 아귀는 참아귀’ 라고 누가 귀띰을 해 주어 속는 셈치고 한번
사 먹어 보았더니.., 역시 원재료 선택이 요리의 첫 걸음임을 알게 되었다.
아자씨왈/ 보통사람들은 잘 몰라요 같은 참아구라도 유자망으로 잡은 것과
자기가 가져오는 것은 저인망으로 잡은건데 맛이 다르다니깐요
아귀는 요즘이 딱 제철인데 12월부터 2월까지가 한창이고 겨울이 되면
더 윤기가 생기고 살이 쫀득쫀득하고 단단해 진다면서 덧붙여
생선의 3대 간은 홍어간 깩주리간 아구간을 치는데 요게 진짜니까 버리지 마세요 하며
자기는 참아구 아니면 가져오질 않는다나..?
우린 궁금한건 꼭 증거를 찾아 봐야하는 쫌 까칠한 성격!
아귀의 다른 이름은 아구어(餓口魚), 즉 ‘굶주린 입을 가진 생선’이다.
몸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입이 큰 데다 배를 갈라보면 갖가지 생선이 들어 있어
어민들이 붙인 이름이다.
물텀벙이 라고도 불린다. 그물에 걸려도 그 못생긴 얼굴 때문에 어부들이 그냥 버렸는데
물에 버릴 때 ‘텀벙’ 소리가 났기 때문. 아귀는 이렇게 못생겨 서럽던 생선이다.
그러다 1960년께 마산 오동동 시장의 한 할머니가 버려진 마른 아귀를 찜으로 만들며
아귀찜이 탄생하고 비로소 대접받는 생선 아귀의 시대가 열렸다.
가장 맛있는 것은 참아귀이며 황아귀(yellow goose fish)라고도 부른다.
위 아자씨가 자기는 모슬포 제주시 성산포 3군데 장만 다니는데
가는 곳마다 특별히 잘해주고(?) 싶은 손님이 한분씩 있는데
성산포에서는 ‘선생님’이라면서, 오늘도 한 마리 척 덤을 준다.
거기에 고무되어 평소에 좋은 것 있으면 보내달라는 지인들에게
- 우리 나이쯤 되면 입맛 다시는 재미로 사는 법 -
심부름하는 발길도 사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