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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춧가루

테니스선생 2013. 2. 6. 22:06

여보세요? 민박집이죠? 누구에게 소개를 받았는데 주인아저씨가 가이드를

해주신다면서요? 방값은 얼마에요? 꼬치꼬치 묻길래.., 일단 비행기표가

중요하니 항공권을 구입하고 나서 이메일 주소를 알려주면 자세한 일정과

비용을 알려 주겠다, 그다음 다른 곳과 비교해보고 확답을 달라고 했다.


따님이 부모님을 모시고 온단다.

제주공항에 출영 나오는 가이드들은 대부분 손님 성함을 적은 A4 용지를

들고 있는데.., 어쩌다 손님맞이를 하는 나는 좀 쑥스러워서 항상 카우보이

모자 쓴 키 큰 아저씨를 찾으라고 한다.


예쁜 아가씨가 쓰윽 지나치며 나를 유심히 보더니 “베드로아저씨세요?”한다.

이어 나오는 부모님의 행색을 보고 깜짝 놀랐다. 돈도 좋지만.., 관광지에서

뭇사람들의 시선이 염려되었다. 순간! 얼마나 귀한 여행길이실까..? ‘정성을

다해 잘 모셔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모든 곳이 새롭고 좋다면서 세 식구가 얼굴이 맞대고 사진을 많이 찍었다.

이윽고 저녁식사 전에 어머니가 기도를 하시는데 말씀이 예사롭지 않았다.

집에서 걸어서 30분쯤, 20년을 한결같이 4시 반 새벽종을 치시느라고

동네 밖을 떠나지 않으셨단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짐없이...


아버지 회갑을 맞이하여 온 가족이 함께 여행을 오려고 했는데, 오빠와

남동생이 각각 백일잡이 아이가 있어 여식이 앞장서게 되었다고 한다.

통성명을 하고보니 慶州 李氏에 만나기 힘든 ‘菊堂公派’로 종씨가 아닌가..?!


아침은 숙소에서 제공하고 점심은 관광하면서 먹고 저녁도 함께 하다보니,

커다란 니꾸사꾸에 한 배낭 가득 가져오신 사과 감 찐쌀을 간식할 겨를이

없어 몽땅 내어 놓으면서 “혹시 고춧가루는 어떻게 하시능교?”하고 묻는다.


물론 사먹기는 하는데 요즘 믿을만한 것 구하기가 힘들다니까..,

“앞으론 고춧가루 걱정은 하지 마이소!” 하신다.


2박3일 짧은 여행이지만 먹고 자고 운전 가이드를 하면서 정이 들었는지

공항에 도착하자, “잠깐”하며 고쟁이 속에서 금일봉을 꺼내 손에 쥐어준다.

오히려 내가 신세를 졌거늘.., 맛나게 드시던 고등어를 사서 택배 해 드렸다.


그 후로 여느 동기간 보다 더 살갑게 모진 바람불면 바람 분다고, 폭설 소식

에는 눈 걱정에, 이런저런 안부에, 쌀에 된장에 고추장에 고춧가루는 물론...


부모님이 가족들이 모일 때마다 제주도 아저씨 얘기를 해서 이제야 궁금증

을 풀러왔다면서 지난해엔 온 가족이 총 출동을 했다.

그 사이 손자들도 늘어나 애들이 모두 뛰어다니고...

- 자손들 인물이 훤~한 게 보기 좋다! -


계단식 밭에 고추농사를 짓느라고 물지게로 물을 져 날랐지만 너무 가물어

이번엔 고추농사가 형편없었다고 한다.

늠름한 자식들이 한마디 거든다. “이젠 고마 쉬시라고 해도 막무가내 세요.”


나도 슬그머니 끼어든다. “애들 줄 것과 제주도에 보낼 만큼만 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