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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리와 숨바꼭질

테니스선생 2009. 5. 19. 05:55
고사리를 꺾으려면 부지런해야 한다. 다른 사람보다 먼저 고사리왓에 도착
해야 많이 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5시 반에는 집에서 출발해야 한다.

어느 분은 그 많은 고사리를 꺾어 어디에 보관하느냐고 묻는다.
그리고 팔지는 않느냐고 묻는다.
고사리왓에 갈때마다 만선의 꿈에 부푼다. 낡은 초등학교 애들 책가방에
한 배낭 정도 꺾으면 만족이다. 그 정도 꺾으려면 한걸음에 한개씩은 꺾어야
한다. 고사리왓이 넓더라도 일삼아 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금년 시즌
만선은 두어번..?

한번에 두세시간이면 지친다. 집에 돌아와서 가스불에 삶아 삼다수로 헹구어
가지런히 널어놓으면 오전이 지나간다.
바짝 말려 300g씩 비닐봉투에 담는다. 집사람과 하루에 잘 꺾어야 900g,
한근 반이다. 마누라는 달력에 통계를 낸다. 4월 초부터 5월 중순까지 20근.

고사리 보내야 할 곳을 적어놓은 메모지를 슬쩍 훔쳐본다. 15군데, 지금쯤
안보내면 섭섭해 할 곳들이다. 한근씩 두 봉다리, 택배비가 아깝다고 표고
버섯을 한 자대기 사다가 한 봉다리씩 함께 포장해서 택배를 했다.

여기저기 인심을 쓰더니 우리 먹을게 없단다. 납회를 약속하며 고사리왓에
다시 나간게 몇 번째, 오늘은 정말 고사리가 없다. 고사리 한테도 미안하다.
찔레꽃 밑둥에 숨어있는 넘을 찾으며 숨바꼭질하듯 찾아도 반 배낭에 미달.
그래도 부인님은 용케도 많이 꺾었다. 또 딱 한번만 더 가자고 조른다.

금년 고사리 시세는 한근에 3만원. 육지에서 고사리를 구해 달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동네 할머니로부터 사서 보내주었다. 이젠 시마이다. 더 이상
없으니 내년을 기약하고 부탁 전화는 사양한다.

고사리왓에서 나오는 길에 같은 방향의 할망과 아주망을 차에 태워드렸다.
고사리는 한번 꺾은 자리에 할망은 열두번이 난다고 하고, 아주망은 아홉번
다시 난다고 논쟁이 붙었다. ‘아마 사시는 동네에 따라 다르겠지요’ 하며 중재를 섰다.
고사리를 제사상에 올리는 이유는 이렇게 왕성한 번식력을 인간들이 본받아
자손을 많이 번성케 해 달라는 뜻이란다.

고사리 꺾다보니 공인중개사 시험공부가 많이 밀렸다. 시험 수준을 보니 장난이 아니다.
전국적으로 소문을 내놔서 떨어지면 망신인데 오늘부터는 공부에 전력을 다해야겠다. ^^

* 한라산 밑에 엄청난 저수지가 있단다. 삼다수 공장에서 취수해서 팻트병에
담으면 삼다수요, 파이프로 보내면 수돗물이다. 따라서 도민들은 삼다수로 샤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