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콧수염

테니스선생 2011. 10. 18. 22:27

지난 8월 중순,

항암제를 맞고나니 머리가 한웅큼씩 빠져 섬뜩하기도 하지만 부인님이 보면

놀랄 것 같아 평소에 가던 이발소에 가서 빡빡 밀어 버렸다.

샤워를 하며 머리를 비비니까, 그나마 짧은 머리카락이 뿌리 채 빠져버려

긴 머리가 빠질 때보다 더욱 서글펐다.


그야말로 맨질맨질.., 처음에는 조금 부끄럽기도 했지만 이왕 빠진걸 어떡해,

일상복도 회색빛깔의 개량 한복을 구해 입고 다니다보니 영락없는 시님 모습.


하루는 집에 온 여성 손님 네분과 우리 부부가 함께 동네 바닷가 성게칼국수

집에 식사를 하려가서 좌정을 하고 앉아 있노라니..,

먼저 식사를 마치고 나오던 손님들이 시님이 보살님들과 온 것으로 알았는지

합장을 하며 인사를 하는데, 아니라고 할 수도 없고 얼떨결에 목례를 하며

쓴 웃음을 삼키던 웃지못할 헤프닝이 벌어지기도...


그야말로 온 몸의 털이란 털은 다 빠져 병원 출입이외엔 두문불출, 집 앞 바닷가

산책이나 하며 지내는데, 엊그제 거울을 보니 코 밑이 거뭇거뭇..,

부인님을 불러 자세히 관찰을 하라고 했더니 머리에도 새 순이 돋는다나..?!


반가운 마음에 며칠 지켜보았더니 콧수염과 턱수염이 제법 소복해졌지만

벌초하기 아까워 그대로 두었더니 임재범의 다듬지 않은 얼굴 모습을 닮아간다.


발목과 발등의 수술 부위도 다 아물고 살금살금 걷다가 뛰다가 테니스라켓도

휘둘러보다가, 내가 아픈 후 코트에 발길을 끊었던 부인님을 운동시키려,

등 떠밀어 코트에 모셔가서는 연습공과 함께 구찌빤치나 날리고 온다.


마침 짝이 맞지 않아 코트에 들어설라치면 옆 코트의 부인님이 소리치신다.

몸도 성치 않은 사람이 어딜 들어오려고 해, 우린 시님하곤 안 놀아.

머리카락 다 자란 담에 들어와!

 

- 오늘은 제법 자란 콧수염으로 밀어 붙여 봐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