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이야기는 ‘말 못하는 공이나 팹시다’ (환갑기념 테니스에세이집)에
집대성(?)하여 안주꺼리가 바닥이 났고.., 치매 예방에 좋다는 글쓰기를 멈출
수 없어서 민박집을 하며 겪은 일화를 생각나는 것부터 하나씩 소개해 볼까
한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말로 어떤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을 종종 본다.
사실 다녀가신 민박 손님에 대한 얘기는 프라이버시이기도 하고, 이 친구가
자기 집 선전을 하나 하는 불필요한 오해를 낳을 수 있어 피해왔다.
내가 제주도 성산포로 이주해서 나름대로 연구해서 뉴질랜드식 목조주택을
짓고는 민박집 아닌 민박집을 하고 있다.
벌써 14년이 경과하였으니 그동안 수많은 손님들이 다녀갔을 터이다.
처음부터 민박을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닌데 ‘행복이 가득한 집’이라는 잡지에
사는 모습이 게재된 후, 팔도강산에서 그 기사를 본 사람들이 궁금하다 면서
찾아와, 자의반타의반으로 B&B(Bed & Breakfast)를 하게 된 것이다.
한번 다녀간 분들의 입소문으로 한동안 ‘손님이 오면 좋고 안 오면 더 좋다’
고 할 정도로 바쁜 적도 있었는데 아무튼 그 시절 한 가족에 대한 추억담
이다.
흔히들 아들 가진 집은 마땅한 며느릿감이 없고, 딸 가진 집에서는 마음에
드는 사윗감이 없다는데, 나도 참한 규수만 보면 다시 한번 뒤돌아보던
시절이었다.
부부가 서너 살쯤 되는 어린아이를 데리고 왔던 것 같다. 부인이 용모도
아름답지만 행동거지와 말씨가 그렇게 차분하고 조용하고 우아했다.
돈 내고 잠자면서도 주방에 내려와 집사람에게 제가 할 일이 없느냐 면서
상냥하고 붙임성이 있게 대화를 나누어서 정말 저런 며느리 얻었으면
좋겠다고 우리 부부가 탐을 낼 정도였다.
떠나기 전날 밤, 그 사이 정도 들어서 남편과 술 한잔하게 되었다.
사실 전투기 편대장이라고 자기소개를 했다.
본인도 5분 대기조로 매일 긴장 속에 살기도 하지만, 부인이 그야말로
출근했다 돌아와야 오늘도 하루가 갔다고 안심한다는 살얼음 같은 생활을
한다고 했다.
멋쟁이 공사생도에 반해 결혼을 해서 빨간마후라를 두른 파이롯트 남편이
자랑스러우면서도 아이가 태어나서 자라날수록 더욱 더 남편의 안전을 염려
하게 된다고 한다.
매일 지아비의 기분을 다치지 않도록 그저 조심에 조심을 하며 뒷바라지를
하다보니 자기도 모르게 성격까지도 바뀌었다면서 조신하게 웃는다.
잡지에 소개된 글을 보고 자기들도 나중에 나이를 먹으면 우리부부와 같이
살아보자고 찾아왔다는데 과연 그런 ‘멘토’가 될 수 있을는지..?!
나폴레옹꼬냑을 한 병 다 비운 것이 미안했던지 돌아가서 좋은 술을 보내
주겠다고 애를 쓰다가 택배가 여의치 않아 못 보낸다면서 언젠가 다시 찾아
오겠다고 했는데.., 높은 하늘에 쌕쌕이가 하얀 자국을 내며 지날 때마다
가족들 모두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