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당보름]/바당보름 소개

제주도를 찾는 사람들에게 또다른 가족이 되어주는 바당보름

테니스선생 2006. 12. 19. 07:43

                (행복이 가득한집 2002년4월호 게재)

 

성산일출봉 근처의 섭지코지는 바람, 돌, 여자가 많다는 제주도의 특징이 특히 강한 곳이다.

조금 외진 탓에 관광지로서의 본격적인 개발은 덜 되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인심도 야박하지 않고 푸근하고 정겨운 곳이다.

 

돌담을 두른 야트막한 집들이 겹겹이 이어지는 이 일대에 3년 전 좀 별난 집이 한 채 들어섰다.

서울서 내려왔다는 부부, 시공회사 사람들, 뉴질랜드인 작업 인부가 몇 달에 걸쳐 공사를 한 끝에

마을 사람들 보기에 생소하기 짝이 없는 “뉴질랜드식 목조주택”이 만들어진 것이다.

 

바람세기로 치자면 모슬포와 더불어 1,2등을 다투는 성산포이다.

동네 사람들은 나무집이 과연 튼튼할까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러다 역사상 두 번째로 심했다는 태풍 “올가”가 밀어닥쳤을 때에

“호르륵 무너지지 않고 튼튼히 서 있는” 모습을 확인한 후 그제야 “집 잘 지었데” 하는 인사를 들었다고 한다.

 

 이용호 이재현씨 부부가 바로 이 별난 집 주인이다.

제주도에 땅을 구하게 된 데에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스포츠란 스포츠는 모두 섭렵하던 남편 이용호씨가 제주도에서 가장 외진 동네라 할 수 있는 신양리에

윈드서핑 하러 내려왔다가 그만 섭지코지가 있는 신양리의 풍광과 사람들에게 반해버린 것이다.

 

그는 마을 복덕방의 문을 열고 아무 생각 없이 요즘 이 동네 땅값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정말 순수한 호기심 차원에서” 물어 보았다.

그런데 복덕방 주인이 반색을 하며 반기더니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을 내놓을 예정인데

관심 있으면 좋은 가격에 넘기겠다고 제안을 해온 것이다.

 

얼떨결에 그 집을 샀고 “나이들면 언젠가 내려가 매일 바다 구경도 하고 윈드서핑도 즐기겠다”는 희망으로

그저 10년간 내버려두었다고 한다.

그러다 IMF 때문에 온 나라가 정신없을 무렵, 은행에 잘 다니던 남편 이용호씨는 농담처럼

“나 회사 그만둘까” 한마디를 던지고는 며칠 후 정말 사표를 쓰고 훌쩍 제주도로 내려갔다.

 

어차피 은퇴 후 내려갈 제주도, 조금 먼저 가서 자리잡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제주도에 내려갈 마음이 아직 없던 부인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내가 바로 북송선 탄 재일동포였다니까요.

남편이 하루가 멀다 하고 제주도와 신양리가 얼마나 좋은지 입이 마르게 칭찬을 했어요.

이야기만 듣자면 완전히 지상낙원이죠.”

 

얼떨결에 서울 집을 정리해 제주도로 내려갔더니 남편은 목조주택을 짓고 있었다.

별 수 없이 아내는 집이 다 지어질 때까지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 밤낮으로 밥을 해 날랐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바로 객실 두 개를 갖춘 아담한 B&B이다.

 

1층은 주인 내외가 사용하고 2층은 침대가 놓여 있는 양실 하나,

이불을 펴고 자는 한실 하나와 샤워 시설이 갖추어진 화장실, 간단한 조리대,

넓은 거실로 이루어져 있어서 독립적인 휴식이 보장된다.

 

그렇게 생활한 지 3년이 흘렀고 재미 삼아 시작한 이곳에는 심심치 않게 손님이 이어지고 있다.

아침이면 주인 내외와 손님들이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

오늘은 어디가서 무엇을 하는 것이 좋은지 열심히 상의한다.

 

“3년간 제주도를 3백 바퀴 돌았던 터라 이 섬에 관한 모든 것을 알고 있으니 내 말만 믿으라”는 남편의 말에, 아내 이재현씨는 한쪽 눈을 찡긋해 보이며 “70퍼센트만 믿으라”고 속삭이는 영락없는 천생연분이다.

 

어디를 구경해야 할지, 점심과 저녁은 어디서 먹는 것이 좋은지 부부의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나면

제주도가 초행이라고 해도 별 걱정이 없다.

 

사람 좋아하는 이들 부부와 지내다 보면 관광이고 뭐고 다 그만두고

그냥 이 집의 재롱둥이인 진돗개 “왕초”와 놀거나 마을 구경이나 다니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저 숙박업을 하기 위해 만든 집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나 받지 않는다고 한다.

취재를 위해 방문했을 때에도 “우리 집 이야기는 어떤 분으로부터 들으셨나요?” 하는 질문을 받았다.

 

구체적으로 누구로부터 소개받은 것이 아니었기에 혹시 “딱지” 맞는 것이 아닌가 잠시 긴장 했는데

다행히 “면접”을 잘 통과해 머물 수 있었다.

 

그저 투숙객이 아닌 잠시 동안의 새로운 식구를 맞이하는 일이기에

주로 이미 이곳에 머물렀던 사람들로부터 소개받은 사람들이 찾아온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곳에 머물려면 “빽”이 필요하다는 말을 농담처럼 했다

(이 책을 보고 찾아가는 분들께 <행복이 가득한 집>이라는 “빽”이 조금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

 

제주도에서 제일 멋진 드라이브 코스를 안내해주겠다는 이용호씨를 따라 나선 길,

차 안에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흘러 나왔다.

 

“흔히 사람들은 나이 들어 제주도에 예쁜 집 짓고 사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하잖아요.

그러려고 하기 싫은 일도 억지로 해가며 저축을 하죠.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소원을 미리 앞당겨서, 그것도 꽤 쉽게 이룰 수 있다, 이 말이에요.

도시의 비싼 집을 정리해 여기에 작은 집을 사면 되잖아요.

그리고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열심히 하면 되고요.

이것저것 계획 세우고 따지다 보면 절대 이 아름다운 곳에 내려오지 못한답니다.

마음 내키는 대로 따르세요.”

 

이용호씨의 실감나는 제주도 찬가를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마음이 혹해졌다.

“혹시 이 주변에 팔려고 내놓은 작은 집은 없답니까?” 하는 말이 입안에서 계속 맴도는 것을 참느라

손으로 입을 꼭 막아야 할 정도였다.

 

문의 064-784-8887     글 김은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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