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제주도 고사리 이야기

고사리왓 전설(2) -님도 보멍 고사리도 꺾으멍-

테니스선생 2009. 4. 10. 13:56
고사리를 ‘딴다’ 는 표현보다 ‘꺾는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 같다.
깊은 산속은 아니지만 고사리를 꺾으며.., 아니 고사리를 찾으며 한걸음씩
걸음을 옮기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차츰 숲속 험한 곳으로 들어가게 된다.

아무래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일수록 고사리가 송송 빼곡하게 돋아
있을 터이니까.., 아무도 다녀가지 않은 고사리왓, 눈 앞에 손가락 만큼
굵직굵직하고 싸리비같이 키큰 넘들이 키자랑 하듯 숭숭 솟아오른 모습을
보고나면 꿈속에서도 아른거릴 정도로 인상이 깊다.

굵은 고사리는 열개만 꺾어 쥐어도 한 손아귀에 넘칠 정도이다.
그런 탐스런 넘들을 남몰래 꺾는 재미가 쏠쏠해서 고사리왓은 며느리에게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고 한다. 해뜨기 전에 집에서 출발해서 다른 사람보다 먼저
고사리왓에 도착해야 그런 손맛을 볼 수가 있다.

고사리는 ‘아주망’이나 ‘할망’만 꺾는 것이 아니라 가끔씩 나 같은 아저씨들
도 나타나곤 한다. 나야 마누라가 험한 들판에서 길을 잃을까 에스코트차
따라 나섰다고 한다지만, 예전에 언젠가 흑심을 품은 나쁜 넘들이 고사리왓에
얼씬거린 적이 있었다고 한다.

제주도판 ‘발바리’라고나 할까? 몹쓸 짓을 당하고 고사리도 빼앗겼다나 어쨌다나,,?
암튼 고사리왓에 소나이(사나이의 방언)가 나타나면 젊은 아주망들은 몸을 사린다.
남정네들은 고사리왓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그러나 요즘의 고사리 매니아 아주망들은.., 님은 볼 때 보더라도 고사리만은 안된다
면서 코웃음을 친다.

요며칠 부인님이 피곤하고 바쁘시다면서.., 그러나 고사리 보낼 곳은 많아
년간 소요량을 채워야 하기에 당신이라도 부지런히 나가라고 등을 떠밀어
혼자서 새벽녘에 나만의 고사리왓에 가서 쏠쏠하게 손맛을 보고 왔다.

그곳은 좀 외져서 인적이 드문 곳인데 왠 아주망이 매일 아침 비슷한 시간에 나와
내 뒤만 졸졸 따라 다닌다.
낼 아침에 또 만나면 통성명이라도 해봐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