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이야기]/제주도의 천주교 성지

황사영 백서

테니스선생 2006. 12. 9. 06:51
황사영백서 []
요약
천주교 신자인 황사영이,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신앙의 자유를 강구하기 위해 당시 베이징[] 주교에게 보내고자 했던 청원서.
구분 청원서
저자 황사영
시대 조선 후기
소장 로마 교황청 민속박물관
배론 성지 / 조선 후기 천주교도 황사영이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베이징에 있는 주교에게 청원서를 쓴 토굴. 명주천에 썼기 때문에 '백서'라고 한다.
본문

두 자 가량 되는 명주천에 썼기 때문에 ‘백서()’라고 하는데, 깨알같이 작은 1만 3311자나 되는 방대한 내용의 한문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 내용은 대략 3부분으로 되어 있다. 먼저 당시의 천주교 교세와 중국인 주문모() 신부의 활동, 신유박해 사실과 이때 죽은 순교자들의 약전을 기록하고, 다음에는 주문모 신부의 자수와 처형 사실, 끝으로 당시 조선 국내의 실정과 이후 포교하는 데 필요한 방안들을 제시하고 있다. 외세를 끌어들이려 했다는 점에서 <황사영 백서>는 민족 감정에서 나오는 공격의 대상이 되어 왔지만, 한편 교회의 평등주의라는 원칙과 당시 조선사회에 미친 혁명적인 영향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 일부 사가()들의 주장이기도 하다. 황사영은 이 백서가 관변측에 압수됨으로써 1801년 대역죄인()이 되어 능지처참을 당하였다. 원본은 당시 서울 주교로 있던 뮈텔(한자명 )이 1925년 한국 순교복자 79위의 시복() 때 교황 피우스(11세)에게 바쳤는데, 현재 로마 교황청 민속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교황청에서는 이를 200부 영인()하여 세계 주요 가톨릭국에 배포하였다고 한다.